
서문 —아파트의 도시가 되어버린 한 해양도시의 시간
부산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안다.
이 도시는 바다와 산이 너무 가까워 서로의 경계를 뚜렷하게 그려버린다는 것을.
파도가 부딪치는 바다는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생동의 공간인데,
그 뒤편으로 겹겹이 이어지는 산들은 사람의 손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
부산은 애초부터 넓은 평지 위에 도시를 넓게 펼쳐놓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었다.
이 도시는 언제나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도시,
틈과 틈 사이에 낮은 골목을 깔고,
산허리를 깎아 집을 지으며,
언덕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방식으로 도시를 확장해왔다.
그런 도시가 선택할 수 있는 도시 성장 방식은 너무 분명했다.
주거지가 곧 도시의 중심이 되는 것.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지형이 강제한 방향이었다.
1. 이 도시는 원래부터 넓게 펼쳐질 수 없었다
부산의 바다는 언제나 감각적으로는 넓어 보인다.
수평선이 있고,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고,
지평은 끝없이 이어져 보이기에 사람들은 이 도시가 거대한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도시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측정되는 순간,
부산은 돌연 작아진다.
넓어 보여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바다에 등을 보이면 곧바로 산이 있고,
산을 피하면 도로와 절벽이 있다.
그래서 부산의 도시 확장은 늘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휘어지고,
산 능선을 따라 길을 내고,
사람들은 집을 짓기 위해 늘 경사와 싸웠다.
서울이 평지 위에서 네트워크형으로 확장한 도시라면,
부산은 늘 가장 지을 수 있는 곳부터 채우는 방식으로 확장했다.
여기서 첫 번째 명제가 생긴다.
부산에서 집은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가능한 공간 자체에 대한 점유였다.
따라서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부동산이 곧 자산이고, 삶이고, 생존이었다.
2. 산업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집이었다
한 도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유입시키고 머물게 할 이유가 필요하다.
서울에는 본사가 있고, 경기도에는 생산기지가 있고,
대구에는 섬유-철강 기반의 제조업 생태계가 있다.
그렇다면 부산은?
부산은 한때 제조의 도시였다.
항만과 공장이 도시를 움직였고,
사람들은 조선소와 기계 공장과 운송업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산업 구조가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부산의 산업은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기업 본사가 서울로 옮겨갔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났다.
조선·기계 중심 산업은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동남권 산업벨트는 점점 무게 중심을 잃었다.
도시를 떠받치던 산업 기반이 느슨해지자
남은 것은 하나였다.
집.
집을 짓는 것은 돈이 되었다.
집을 사고파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유일한 방패가 되었다.
개발은 산업이 아니라 주거 중심의 개발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이 도시가 아파트의 도시가 된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3.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가능성의 표상’이었다
부산의 아파트는 서울과 개념이 다르다.
서울에서는 아파트가 투자, 학군, 브랜드, 교통 접근성의 조합이라면,
부산에서 아파트는 먼저 입지 그 자체의 운명이다.
바다를 볼 수 있는가.
평지인가.
생활권이 연결되는가.
낮과 밤의 풍경이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가.
그래서 수영만을 내려다보는 아파트들은
단순히 높은 가격을 가진 건물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삶의 이상을 담은 풍경이 되었다.
남천동의 오래된 고급 주택가,
용호동 이기대 해안절벽을 따라 선 아파트 단지들,
마린시티의 초고층 유리 타워들,
센텀의 쇼핑몰과 전시장이 이어진 문화 축.
이 모든 풍경은 한 가지 공통된 메시지를 말한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며 살고 싶었다.”
주거가 도시의 얼굴이 되었고,
아파트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바다를 소유하려는 욕망의 형태가 되었다.
4. 하지만 도시가 주거로만 확장될 때 생기는 피로
아름답지만 불안한 도시.
이것이 지금의 부산이다.
아파트는 사람에게 안정을 주지만,
도시에게 생산은 주지 않는다.
사람이 떠나지 않기 위해 도시에 집을 올렸다면,
이제는 도시에서 사람이 떠나는 이유가
일자리가 아니라 주거비가 되어버렸다.
특히 동래–남천–수영–해운대 축은
주거의 고급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 안에 살 수 있는 사람과 살 수 없는 사람의 경계가 분명해졌다.
도시가 풍경을 위해 자신을 비싸게 만든 순간,
도시는 더 이상 모두의 도시가 아니게 된다.

5. 그렇다면 부산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부산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집을 덜 짓는 것도,
집을 더 짓는 것도 아니다.
부산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 명분은 산업일 수도 있고, 교육일 수도 있고, 문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도시는 다시 사람을 붙잡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아파트는 도시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부산이 다시 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다를 바라보는 창이 아니라
바다를 바라보며 일할 수 있는 기반이다.
6. 결론 — 바다를 갖고 있지만, 아직 그 바다를 도시화하지 못한 도시
부산은 여전히 아름답다.
광안대교 위로 바람이 흐르고,
마린시티의 유리벽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센텀의 밤은 도시의 무게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은 도시를 지탱하는 뼈가 아니다.
부산은 지금 바다를 배경으로
다시 자신의 존재이유를 써야 하는
도시의 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문을 여는 열쇠는
아파트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 이유이다.
도시란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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