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좌천동 언덕 위의 새 시대
부산 동구 좌천동 1168번지, 낡은 철길과 시장, 그리고 오래된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2006년 완공 당시 ‘부산 원도심 재생의 신호탄’으로 불렸다.
466세대, 3개 동 규모로 당시로서는 결코 작은 단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단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함께 섞여 있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저 아파트 단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기억 위에 세워진 실험’ 이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좌천·범일 일대는 부산 산업의 뒷골목이었다. 철도, 조선, 물류가 얽힌 부산항의 배후지였고,
부산역으로 이어지는 도심의 생명선이었다. 그러나 산업 구조가 바뀌고 항만이 북항으로 이동하면서 이 일대는 빠르게 노후화됐다.
2000년대 초, 부산시는 이 낙후된 원도심을 재생하기 위한 실험으로 ‘범일·좌천 뉴타운 계획’을 내세웠고,
그 중심에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이 있었다.
2. 도시재생의 첫 세대 — 2000년대 뉴타운의 시작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정비형 재개발의 초창기 모델이었다.
서울의 상계, 은평, 그리고 부산의 좌천·범일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정되었다.
당시 부산시의 구상은 명확했다. “산업 쇠퇴지의 주거 기능을 회복시켜, 원도심의 인구를 붙잡자.”
그러나 이 실험은 순탄하지 않았다.
좌천동은 평지보다 약간 높은 구릉지 위에 형성된 동네였다. 지금의 두산위브범일뉴타운 역시 지형적 기복이 크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부산항과 범일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접근성에서는 분명히 평지 아파트에 비해 불리하다.
이 지형적 특성은 단지의 ‘주거 체감가치’와 ‘생활 동선’을 나누는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평지 아파트 선호’가 강해진 것은 단지의 편의성뿐 아니라, 일상의 피로감이 줄어드는 주거 동선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런 점에서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시대의 선호와 약간 엇갈린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이 단지를 ‘도시적’으로 만든다.
이곳은 단순히 편리한 신도시형 아파트가 아니라, “기억의 지형 위에 세워진 도시 주거의 실험”이었다.
3. 입지 평가 — 원도심 입지의 역설
입지만 놓고 보면,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교통의 중심이자 동시에 사각지대다.
도보로 10분이면 부산지하철 1호선 좌천역과 2호선 문현역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차로는 중앙대로와 충장로, 범일로가 교차하는 요충지다. 하지만 실제 거주자의 동선에서는 지형이 불편하다.
단지는 완만한 언덕을 타고 올라가는 구조로, 저층과 고층의 접근성이 다르다.
이 차이는 노년층이나 어린 자녀를 둔 가구에게는 일상적 피로로 이어진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이 ‘평지 입지’를 고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리 교통이 좋아도, 언덕 위에서 시작되는 하루는 심리적으로 다른 무게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지의 위치는 여전히 전략적이다.
바로 인근에는 범일 롯데캐슬, 좌천·범일 도시정비사업지가 연이어 포진해 있다.
즉,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원도심 재생축’의 중앙부에 자리한다.
이는 단기 시세보다는 중장기 도시 가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부산이 ‘동구-중구-남구’를 잇는 해안축을 새로 구성할 때,
좌천·범일 라인은 필연적으로 중심에 선다.
4. 생활 인프라 — 오래된 도시의 리듬
좌천동 일대의 생활권은 범일동과 맞닿아 있다.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범일시장, 자유시장, 그리고 부산진역 인근 상권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는 신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의 깊이다.
조금 오래되고 복잡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시장과 소상공인 상권이 여전히 지역을 지탱한다.
교육 인프라도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학군 프리미엄’ 지역은 아니다.
성남초등학교가 배정되고, 인근에는 범일중학교 등 일부 중학교가 있으나,
좌천동 지역은 금성중학교 폐교 이후 중학교 학군이 사실상 부재한 상태이다.
동래·사직 학군과 같은 입시 중심 학군지와는 다른 결이다.
즉, 이곳의 주거 선택은 ‘교육’이 아니라 ‘도심 접근성 + 생활 기반’이다.
이 점이 바로 부산의 원도심형 주거의 특징이자 한계다.
5. 도시구조 속의 두산위브 — 원도심 아파트의 상징성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2000년대 중반 부산이 ‘신흥 주거도시’로 거듭나기 전,
원도심의 주거 품질을 끌어올린 첫 실험이었다.
그 시절 부산의 주택 공급은 대부분 남구, 해운대, 수영구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구는 여전히 ‘낡은 항구도시의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단지가 완공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이다.
이곳은 단지의 규모보다 ‘도시의 방향’을 바꾼 선도적 프로젝트였다.
범일 롯데캐슬 시그니처, 서면삼한골든뷰센트럴파크, 자이 힐스테이트 하이퍼시티 등
이후 등장한 부산 원도심 재개발 대형 단지들은
모두 이 프로젝트 이후에 이어진 흐름 속에 있었다.
즉,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부산 원도심 아파트의 ‘1세대’이자 ‘교두보’였다.
6. 사회적 의미 — 쇠퇴 도시의 회복 모델
도시사회학적으로 보면, 이 단지는 쇠퇴 도시의 회복 모델로 읽힌다.
철도 배후지, 공업지, 낙후 주거지라는 과거의 정체성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중산층 주거를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도시 회복의 서사’ 를 품고 있다.
즉, 이곳은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쇠퇴의 기억을 품은 도시의 회복 장치’였다.
실제로 입주 초기에 많은 주민들은 이 단지를 ‘범일의 미래’라 불렀다.
그 말 속에는 단지의 가치보다 ‘도시의 희망’이 담겨 있었다.


7. 시장 가치 — 평지 프리미엄과 원도심 리스크
현재(2025년 기준) 이 단지는 준공 20년을 앞두고 있다.
노후화가 진행되었지만, 구조적으로는 안정적이다.
다만, 신축 단지들이 쏟아지는 부산 부동산 시장에서 ‘언덕형 단지’라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한다.
최근 들어 시장은 “평지+신축+대단지” 조합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도시의 시간’을 입은 아파트로 남았다.
가격 상승률은 해운대, 수영, 남구의 신축 대비 낮지만,
입지 중심의 안정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원도심 재정비 2단계(북항 2단계 개발, 동구 혁신지구 조성)가 본격화될 경우,
이 단지는 도시 재생 축의 중심부로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
8. 인문학적 결론 — ‘기억 위에 사는 사람들’
도시의 주거는 단순히 건물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을 살아가는가의 문제다.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을 걷다 보면, 여전히 그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골목 어귀의 오래된 상점, 철길 건너의 공터, 그리고 산자락 아래로 보이는 부산항의 불빛.
이 모든 풍경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증언한다.
결국, 이 단지는 ‘도시의 실험실’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도시가 스스로를 되살리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했던 실험.
이곳의 가치는 화려한 분양 성적이 아니라, ‘쇠퇴 도시의 회복 가능성을 증명한 최초의 사례’ 에 있다.
9. 맺으며 — 부산 원도심의 내일을 묻다
이제 부산의 도시축은 서서히 재편되고 있다.
북항재개발, 범일·좌천 2차 정비, 초량·중앙동의 도시재생이 이어지며
‘동부산 신도시’가 아닌 ‘원도심 회복 도시’로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그 한가운데,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은 단지의 이름이 아니라, 부산 원도심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의 흔적이다.
도시의 기억은 건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시간, 그리고 기억이 모여 도시를 다시 쓴다.
두산위브범일뉴타운은 그 서사의 첫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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